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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원 - 파동 15시(詩)/시(詩) 2020. 10. 23. 17:24
접시에 붙박여 있는 풀꽃과 줄기
줄기 뻗어가다 잎사귀, 더 작은 꽃, 작고 당차다
어린 시절 블라우스나 치마를 해 입던 포플린 천에는
자잘한 꽃들이 흔했다 새로 원피스라도 해 입는 날
흐뭇한 기분을 서로 시샘하던 생각이 난다
그만한 것은 덫이 되지 않는다
비 온 뒤 후박나무 같은 청춘의 날들이여
접시에서 사는 파란 꽃은 살던 곳을 잊었는지
그림자도 없는 꽃과 가느다란 줄기를
아무 생각 없이 그렸을까
유년을 지나 느티나무만한 복합 건물이 되어 가는
한 생애가 꽃 피며 줄기 뻗으며 가는 동안
무엇을 짓고 무엇을 부수었는지
짓고 부수는 동안 누군가 일어서고 누군가 무너졌는지
꽃을 그리는 디자이너는 진동과 주파수를 모를 리 없지
파랗게 이어지고
이어지면 풀씨도 맺히는 더 짙어진 선이
저장고에서 손끝으로 붓을 흘러 내려와
오래된 기억을 가만가만 흔들어본다(그림 : 최우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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