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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시(詩)/송경동 2020. 9. 19. 18:54
스무살 때 광부가 되고 싶어
을지로5가 인력소개소를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었다
가방에는 낡은 옷 몇 벌이 전부
갈 곳 없는 나를 땅속에 묻고
이번 생은 베렸다고
이 생을 빨리 지나쳐버리고 싶었다
소개료 3만원을 내고 나니
2만원이 남았다
근처 여인숙 방에 낯선 이 여섯 명이 들어갔다
내일 새벽이면 봉고차가 온다는데
2만원을 꼭 손에 쥐고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우다 희뿌염한 새벽
슬며시 길을 나섰다
인쇄골목 24시간 구멍가게에서 선 채로
막 삶아낸 달걀 세 개에 소주 한 병을
콜콜콜 따라 마셨다
그 달걀 맛이 아직도 짭짤하게 입안을 돈다
너무 쉽게 살아도 안 되지만
너무 어렵게 살아도 안 된다(그림 :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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