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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자 - 내가 사는 계절시(詩)/시(詩) 2020. 9. 12. 18:28
여름이 채 떠나기도 전
귀뚜라미 한 마리 싱크대 밑으로
스며들어 밤마다 운다 여름내
더운 국수를 끓여내던 부엌에는
귀뚜라미 울음이 앞치마처럼 걸려있고
가장 어두운 곳에 뿌려진 울음 하나
나는 가을 옷을 입고
낙엽 밟는 소리로 밥을 짓는다
사르륵 사르륵 밥 짓는 연기에
마로니에 잎이 흔들릴 때마다
흔들린 것들은 울음을 가지고 있다고
이름 지어주면서, 깊어진 것들은
흔들린 사유라고 기록하면서 후욱-
저녁을 끈다
내 안이 환해진다 어둠 속에서
울음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울음은 들꽃을 닮았다
울음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나는 꺾지 않으리라
꽃잎의 수를 세던지 꽃잎
남아있는 사연을 바람에 따라 적으며
울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리라
여름의 귀퉁이를 갉아 먹는 벌레소리에
맑은 저녁상을 차리는 밤
나는 아무도 없는 계절에
살고 있었다
(그림 : 박지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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