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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마흔 그 안온한시(詩)/서안나 2020. 8. 27. 08:12
방에서도 발바닥이 시리다 이제는. 무릎이 튀어나온
후줄근한 생을 걸치고 걸어가는 저 여자. 그녀 안으로
길이 음반처럼 휘어진다. 여자의 몸에서 흩어지는
가벼운 골목길들. 상한 길들이 그녀의 몸에서 조금씩
부패하고 있다. 숨이 막히고 토할 것 같아 물렁거리는
거리들. 이젠 한 손으로 거리의 기억들을 막아낼 순 없어.
그녀가 제 안의 작은 창문을 열면 그대와 그대의 마른
가슴과 안경과 흐트러진 풍경들과. 의자와 열린 옷장들과
검은 기미들. 허리가 맞는 옷이 없어요. 고지서와 펼쳐진
책과 밑줄을 긋다 잠드는 모든 저녁들과 그녀의 사진첩에서
울리던 황금빛 노래들은 이제 길 위에 사소한 한 계절로
저장되리라. 수많은 추억의 문을 열고 닫으며 경계를
넘나드는 저 여자. 그녀의 몸안에 저장된 추억의 경로들.
그녀 안에서 출렁거리는 마흔 그 안온한 골목길들.
(그림 : 류영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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