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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촌 종점에 서 있는 34번 막차의 불빛이
비에 젖은 길을 비추고 있다
창마다 나누어진 노란 불을 밝히고 어둠 속에서
오지 않을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 앞을 지나오는 내 발밑으로부터
두 개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다리는 대나무처럼 길어지고 몸은 둘이 되었다
두 가닥으로 뻗어나간 그림자 중 어느 것이
내 마음에 더 가까운가
한 그림자는 휘청거리고 한 그림자는 꿋꿋하다
빛에도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영혼이,
고통과 열락에도 반응하지 않는 영혼이 있다면
그는 인간일까 천사일까 악마일까
내 몸에서 나와 갈라진, 명도가 약간 다른
몸의 두 어둠을 번갈아 바라본다
몸의 어둠은 채도가 없을 텐데 그림자에도 채도가 있다면
휘청거리는 저 몸의 순도는 얼마나 될까
내 몸의 무채색을 나는 오래 친애하였으나
(그림 : 이순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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