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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 불꽃의 시간시(詩)/이수익 2020. 6. 25. 16:23
관현악이 일제히 숨을
멈추자
바이올린 독주자는 발끝을 들어올린 채
끊어질 듯한 음계를 오르내린다.
그의 심장과
폐, 내장이 먼저 불붙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그의 온몸이 송두리째 화염으로 타올라
무대 위에는 유일신처럼 독주자만 있을 뿐,
나머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없다.
격렬한 조명 앞에 하얗게 노출된
그는, 순교자처럼 비장하다.
한 발자국 물러설 없는 발걸음을 디뎌
완벽하게 죽음의 벼랑 끝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
펄럭이는 불꽃
그늘이
침묵하는 청중들의 가슴 위로
철렁, 내려앉는다.
(그림 : 김주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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