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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재구 - 항구
    시(詩)/곽재구 2020. 4. 18. 08:33

     

    - 용악에게

     

     

    연안 통발 어선들

    다닥다닥 붙은 선창 길

    눈이 나려 배들의 얼굴이 하얗다

    눈송이 참 곱누나

    뱃사람들 떠들썩하게 웃으며

    다찌노미집 연탄 화덕 곁으로 모이고

    술청 아낙은 다시마 초고추장에 청어 과메기를 굽는다

     

     

    사이다 컵에 소주 한 잔 마시고

    적산가옥 늘어선 선창 골목길 걷다

    낡은 도장가게 하나를 만났다

    첫눈 오는 날 목도장에 이름 새기는 것은 서럽고 안쓰러운 일

    도장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얼굴 발그레한 처자가

    아기 젖을 물리다 나를 보았다

    나는 조금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도장 하나 팝세 라고 말했는데

     

     

    아낙 또한 북관 사투리로

    나그네 이름이 뭐수까? 묻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농담으로

    이용악이라 말했는데

    아낙이 내게

    시를 쓰남? 묻는 것이었다

    이용악을 아는가? 물으니

    「하나씩의 별」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눈송이들 아기 울음 들으러 가게 안 서성이고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고깃배들

    원족 가는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줄을 서 있는데

    백두산 자락 산골 마을 만보에서 왔다는

    볼 붉은 처자와 아기를 보며 가슴이 하염없이 설레었다

    (그림 : 설종보 화백)

     

     

    Carolyn Southworth - Safe Har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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