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현숙 - 안부의 무늬시(詩)/시(詩) 2020. 3. 27. 21:04
독거노인은 흰나비다
자유롭다는 건, 자식의 등을 보며 사는 무늬로
편리하다는 건, 손닿는 곳까지만 씻는 무늬로
자유와 편리에 대한
짧고 명쾌한 해석을 끝낸 독거노인은
검버섯 불러와 밥상에 앉히고
세월보다 무거운 허리 협착은
혼자 잠드는 머리맡에 눕혀둔다
노령연금이 자동이체 시킨 노인의 안부는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낡은 청력으로
옷장 앞에서 날개돋이를 준비한다
옷장 속의 질서는 새댁처럼 여전히 얌전한데
물주머니 같은 젖가슴의 늘어진 시간은
노인용 보행기를 밀고 가는 굽은 침묵 속에서
저 흰나비, 이내 곧 날아갈 듯
독거노인의 대문 열쇠를 복사한
딸은, 열쇠에 딱 걸린 안부의 무늬에 목이 메고
흰나비는, 마당의 노란 배추꽃 앞에서 하얗게 웃고
(그림 : 김윤정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희국 - 이별 준비 (0) 2020.03.28 이희국 - 바위 (0) 2020.03.28 모현숙 - 동행 (0) 2020.03.27 모현숙 - 짜장면은 짬뽕을 이긴다 (0) 2020.03.27 곽효환 - 늙은 느티나무에 들다 (0) 202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