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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 늙은 느티나무에 들다시(詩)/시(詩) 2020. 3. 26. 13:28
언제부터였을까
수령이 수 백 년은 되었을
동리의 정자를 품은 느티나무
사방으로 가지를 곧게 뻗어
무성한 그러나 인적 없는 여름을 떠받치고 있다
비늘처럼 껍질이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늙은 느티나무 그늘에
몸 들이고 기대었던 사람을 생각한다
그를 닮고 싶었던 혹은 닮았던
그처럼 살고 싶었던 더러는 그렇게 살았던
바람이 전하는 말과
시간이 쌓아둔 흔적,
무수히 드리웠다 사라지는 삶들을
그는 오랫동안 켜켜이
몸 안에 쌓아두었을 것이다
얼음처럼 투명한 세포들이 쌓은 나이테
이제 그는 단단한 풍경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쉽게 흔들리지도 그렇게
일찍 지지도 그렇게
흘러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림 : 김병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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