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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밸브에 갇힌 노인의 느린 말이 점화되어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도
유쾌한 농담이 가출한 부엌은
점점 말이 없다
부엌의 가전제품들도
제각각의 갱년기로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다
늙어가는 냉장고의 얼굴을 닦아주던
노인의 손등 위에
적막한 오전이 오후의 긴 그림자로 내려올 때
- 냉장고야, 아파도 니 먼저 죽지 마래이
- 쪼매만 더 잘 참고 견디다가
- 니캉, 내캉 같이 가재이
보글거리는 된장찌개 뚝배기 옆에서
뻑뻑한 관절로 견디는 냉장고가
독거노인의 저녁상을 수다로 차려 낸다
(그림 : 김우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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