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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 이별 준비시(詩)/시(詩) 2020. 3. 28. 11:21
빛바랜 사진들이 버려진 어머니 방 휴지통어느 봄날과 어느 겨울이 함께 구겨져 있다
젊은 시간을 돌아보며 목이 멘 걸까
찢어지고 구겨진 생의 살점들
구순 노인의 이별 준비, 흔적을 지우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평생을 지켜온 순간의 화면들
묶음으로 가지런한 내 사진첩을 오랜만에 펼쳐본다
한때 함께했던 그날의 순간들은
지금도 환하게 나를 맞는데
삶의 대지를 쓸고 간 시간의 바람은
그들의 흔적을 흐릿하게 지워 버렸다
기약 없는 꿈과 희망을
새처럼 지저귀게 해주던 친구들
육지를 향해 달려오던 파도처럼 출렁이던 사람들
애써도 잡지 못한 시간과
잊으려 해도 영원히 맴도는 날이 봉함되어 있다
되새기기 싫은 인연
버리고 싶은 사진들을 고르다가
다시 넣는다
아직 나는 이별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림 : 손미량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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