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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 시간의 사포질시(詩)/박상천 2020. 3. 3. 14:28
시간의 거친 사포(砂布)질에
이젠 겨우 어렴풋한 그림자만이 남았습니다.
눈부셨던 빛깔을 문질러 지우고
선명했던 형체를 문질러 지우고
그림자 같은 대강의 모습만을 남겨놓은
시간의 사포질.
겨울이 되자 억새풀들이 하얀 시간의 불꽃을 머리에 이고 서 있습니다.
그 풀숲에는 새들이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바람이 그 사이를 가르고 지나갑니다.
억새풀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
보고 싶습니다.
봄 햇살이 참 따뜻하네요. 햇살은 연두 잎에 살그머니 내려앉더니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부드러운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햇살의 발걸음이 간지러운 듯
몸을 꼬는 새 연두 잎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늘 그립습니다.
풍경 속의,
억새풀 하얀 풀꽃도
터지는 웃음소리도
햇살의 부드러운 발걸음도
몸을 꼬는 연두 잎의 행복도
이젠 모두 어렴풋한 그림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림 : 김용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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