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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마당에 심은
나팔꽃 덩굴이 뻗어나가도록
줄 하나 걸어주었다.
나팔꽃의 꽃말이 허무한 사랑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매일매일 덩굴손으로 그 줄을 붙잡고
온몸을 꼬아가며
길을 가는 나팔꽃.
나팔꽃의 꽃말이 왜 허무한 사랑일까.
길이 끝난 곳에 이르자 마침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지만
더 이상 붙잡을 끈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그는 이내 시들어간다.
사랑의 줄타기,
온 힘을 다해 뻗어나가 보지만
어느 곳엔가 이르면 길이 끊긴다.
오늘도 그렇게 애써 길을 가고 있는
나팔꽃의 꽃말은 허무한 사랑이다.
(그림 : 이상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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