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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 적산거리 126,824km시(詩)/박상천 2018. 2. 15. 16:37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채우다
문득 주행계기판을 들여다보니
구간거리 387km
적산거리 126,824km
다 연소하지 못한 배기가스를 푹푹거리며 달려온
내 인생의 타이어 자국을
주행계기판이 몰래 기록해두었구나.
126,824의 숫자 속엔
서울의 피곤과 한숨이
긴 자동차의 행렬만큼이나 늘어서 있고
동해바다나 지리산 혹은 내 고향의
여유와 웃음도 간혹 섞여 있으리라.
돌아보면 126,824km를 달려온
내 인생의 타이어 자국은 흔적도 없고
찰랑거리던 연료를 다 소진해버린
연료통처럼 가슴이 휑하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낡아가는 마음 한 구석에선
자꾸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룸미러에 비치는 흰머리카락이 새삼스럽다.
기름을 채우고 다시 단추를 눌러
구간거리계를 0으로 돌려보지만
결코 0으로 돌려놓을 수 없는
적산거리 126,824km.(그림 : 김동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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