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천 - 작취미성(昨醉未醒)의 봄날 아침시(詩)/박상천 2018. 2. 7. 18:51
햇살 밝은 봄날 아침이 나른하다.
안주 없이 마신 때문은 아니다.
삶의 어느 구석엔가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그리운 길과
그 길을 오가는 시간들과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는
간절한 사랑의 그림자에
애매한 술병만 자꾸 쓰러졌다.
한 잔을 마시며,
잊으리라 그리움의 꽃 이파리.
또 한 잔을 마시며,
버리리라 그리움의 초록 향기.
어둠 속에선
봄날의 벚꽃 잎들이 별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밤새 마신 술이
아직도 위장 속에서 계곡물처럼 흐르는데
고개를 드니
먼 데 산이 눈에 어른거리고
씩씩거리며 물오르는 나무들의 숨결이 들린다.
문득 한 줄기 바람에 힘없이 흩날리는
벚꽃 잎,
벚꽃 잎,
벚꽃 잎,
얼굴엔 다시 취기가 오른다.
어제의 술이 깨지 않아
아직도 나는
어제에 있다.
(그림 : 백중기 화백)
'시(詩) > 박상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상천 - 적산거리 126,824km (0) 2018.02.15 박상천 - 표백 (0) 2018.02.15 박상천 - 그리움 (0) 2017.07.11 박상천 - 복권 가게 앞에서 (0) 2017.07.11 박상천 - 오동도 (0) 2017.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