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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라연 - 화음을 어떻게든
    시(詩)/박라연 2019. 11. 16. 11:57

     

    어머니! 겨울이 코앞이네요 저는 세상이 모르는 흙, 추운 색을 품어 기르죠

    올해 길러낸 두근거림을 따서 바칠게요 맨 처음은 개나리 다음엔 수선화

    그 다음엔 꽃잔디가 제 몸을 붉게 덮었죠 두근거림을 눈치챈다는  것은

    느낌의 천국이죠

     

    여울진 꽃잔디에 목이 길어진 수선화는 군소 군락으로 번지며 나비처럼

    날아요 시름을 찾아내 바꿔치기하죠 허기의 틈새에서 팬지가 올라오네요

    튤립의 붉은 아침을  함께 먹죠 고요를 열고 일터의 얼룩과 서로의 석양을

    어루만져요

     

    목단과 붓꽃의 기픔이 자학에 눌린 당신 키를 찾아내면 붉은 양귀비 떼가

    소나기처럼 몰려오죠 꽃들이 속속 열리고 횡렬 종대로 색색으로 깔깔대며

    밥상을 차려요 어머니! 그때 우리는  보았어요 검은 탄식을 버리고 섞이며

    이동하는 동작들의 눈부심을요

     

    저는 변방을 떠도는 눈동자의 땅, 반갑게 악수하며 겨루죠 달맞이꽃 언덕은

    남의 슬픔도 빨아들이던걸요 누구나 화엄은 너무 멀죠 화음이라도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사람 몸에 꽃을 보내신 거, 나팔꽃 채송화 분꽃으로 와서 가늘은

    낮은, 야근하는 손을 잡는 거

     

    그 마음 그대로 가을에게 넘겨주는 걸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백일홍 덕에

    알았죠 가을의 꽃은 가장 먼 곳부터 두근거리는 가을햇살이란 것도요 근심을

    씨앗으로 바꾸는 저 해바라기 그늘 아래서는 이 세상을 더는 욕하지 않을 래요

    어머니!

    (그림 : 김혜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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