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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삼학년이 되는 딸애가
앞으로는 용돈을 좀 달라 한다
얼마나? 으음 한 삼천원쯤.
한달에? 아니 일주일에!
월요일 아침이면 어깨 으쓱이며
아비 노릇 하는 재미 쏠쏠하다
딸, 이게 웬 보리야?
응, 보리긴 보린데 물만 주면 자라는 보리야
딸애는 용돈으로 투명 용기에 담긴
보리를 사서 베란다 쪽 창가에 둔다
이거 키워서 보리차도 하고 보리빵도 할 거야
내 말을 잘 들으면 아빠 맥주도 만들어줄게!
투명 용기에 담긴 보리를 세어보니
대충 오십여알이다 와, 싹이 제법 나네?
딸애가 물 주는 걸 깜빡할 때는 물을 줬고
볕이 좋을 때는 투명 용기를 베란다에 내놓았다
봄볕 받고 자란 보리는 어느덧 싹을 베어
보리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좋을 만큼 자랐다
더 놓아두면 누렇게 타들어가 죽겠구나,
시골집 내려가는 길에 보리싹을 챙겨갔다
마늘과 대파가 자라는 텃밭 가장자리에
베란다에서 키운 보리를 옮겨 심는다
딸애는 호미로 땅을 파 보리를 옮겨 심고
나는 어린 딸애에게 농사나 시키는 아비 되어
일절 손 보태지 않고 순전 입으로만
물까지 흠뻑 주고 나서야 손을 턴다
잘 자라라 보리야, 무럭무럭 자라
보리차도 되고 보리빵도 되고
아빠 맥주도 되거라
(그림 : 이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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