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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 배롱나무시(詩)/시(詩) 2019. 9. 8. 10:17
여자는 간지럼을 잘 타는 이였습니다
한여름 염천을 지나며
뜨겁게 피고지기를 수십 해
자미라는 어여쁜 이름으로
한 계절을 풍미하고 있지요
밤새 먼 별자리들과 내통하느라
아침부터 화들짝 쏟아지고 있는데요
그녀의 최고의 덕목은
백일내내 한 번도 찡그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간밤엔 백리 밖까지 마실을 나갔다 왔는지
온통 벌떼같이 달려들어 수군거리지 않겠어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은
하루종일 불콰한 얼굴입니다
아마도 그녀의 수다스러운 고백을 듣고 만게지요
담장 안을 훔쳐보는 사내들의 오가는 입김에도
그만 소스라치게 자지러지고 마는 배롱나무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건
명명백백 거짓말이죠
그녀는 지금도 두근두근
백일을 피고지는 중입니다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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