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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리행 버스는 하루 한 차례뿐이다.
이정표 앞에 멍하니 서서
무량리, 하고 입속으로 부르며
무량한 한 사람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이
길 잃은 마음이 먼저 앞서가며 닿는다.
다 닳은 돌쩌귀 매단 문설주가 쨍쨍한 햇볕에
몸 말리며 서 있는 곳
서슬 푸르렀던 지난 시간들이 자질자질 잦아들고
길가엔 벌써 머리 희끗해진 풀들이 나와 있다.
강심 깊숙이 걸어들어간 투망꾼 몇이서
왁자하게 그물을 던졌다 건져 올리는 소리
이리저리 튀는 물고기들을 잡았다 놓아주는 소리
길에서 산짐승을 만나도 피하지 않는 곳
무량리를 주머니 깊숙이 접어 넣고
부력을 잃고 뜬 물고기처럼 무심히
시간을 강에 빠뜨리고 느릿느릿 걷고 걷는다.
(그림 : 이영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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