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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영 - 고추장 단지를 들여다보며시(詩)/시(詩) 2019. 8. 30. 16:23
베란다 청소를 끝내고
마지막 설거지로 고추장 단지를 열어본다
스텐 국자가 휘어지도록
내용물들 딱딱하게 굳어있다
남을 향해 경직된 사람 속이 이러할까
나는 단지 속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경직 돼 있던
내 딱딱하게 굳은 속이
저러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떡볶이를 볶을 때이거나
부추 비빔밥을 힘들여 비빌 때의 매콤한 맛이
사리처럼 단단한 아픔 한 조각이
그 순간 내 목젖을 치고 넘어간다
울분 덩어리 삶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식욕보다 강한 희망 같은 게 있었구나
하면서 생수 한 바가지를
단지 속에 붓는다
더깨가 진 시간들은 베란다 밖
질척거리는 세상으로 떠 내 버리고
마음 다 말라버린 몸 속에
다시 마음을 쟁여 넣듯
삐득삐득 말라버린 독 속의 장에
생수를 비벼 섞는다
언젠가 저 응어리진 마음이
축축하게 풀릴 날을 생각해 본다
(그림 : 안창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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