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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엽 - 두고 온 우산
    시(詩)/시(詩) 2019. 8. 10. 08:40

     

    우산을 두고 왔다는 걸

    그 도시를 한참 떠나와서야 알았다

    용지호수 근처 쌈밥집에서

    그 도시 사람들과 늦은 허기를 달래고

    때마침 비가 내리지 않아

    그냥 와버린 것인데

    까짓것 비 맞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우산을 두고 왔다는 걸 안 순간부터

    마음이 못내 서글퍼진다

    유목민처럼 살며 어쩌다 한 번씩 찾는 낯익은 도시

    그 낯익음이 이제는 슬픔이 되어버린 도시

    한 모퉁이에 팽개쳐져 있을 내 우산이

    그곳에 남고 싶은 내 마음이었나 싶어

    감추지 못한 내 그리움의 꽁무니였나 싶어

    일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인가

    우산은 마을 밖을 떠돌다 지쳐버린

    늙은 까마귀의 날갯죽지처럼 엎어져 있을 터

    잘 접어 끈으로 묶어두기만 했다면

    누군가 넙죽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좋으련만

    내 속에 사는 여러 마음 중에

    끝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만

    거기 홀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아

    멀어지는 기차 소리는 점점 처연하게 들리고

    영동 지나 다시 차창으로 쏟아지는 비는

    무엇하나 움켜잡지 못하고 미끄러지기만 하는

    까마귀의 발톱마냥 붉게 부르트기만 하고

    (그림 : 황규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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