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 - 폐선 탈출기시(詩)/시(詩) 2019. 8. 7. 12:43
독거의 날들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다
가족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
바닷가 기슭에 흉물스럽게 노숙하고 있는 저 노인
시도 때도 없이 바람에 시달리며
파도가 밀어올린 모래알갱이 몇 줌 받아 안고
좀보리사초, 갯완두꽃이나 키우더니
언제부턴가 괭이갈매기 한 쌍을 세 들였다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던 집
노인은 신바람이 난 모양이다
너울이 밀고 온 물고기를
어께 들썩이며 받아 넘기기 시작했다
물때까지 맞춰 밤을 새우며
바다낚시에 여념이 없다
돔, 주꾸미, 놀래미…
놈들을 쓸어 올리는 너울 성 파도는
노인의 유일한 낚싯줄이다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아 식구를 늘리고
멈췄던 시계가 돌아간다
아마, 두어 번쯤의 계절이 더 다녀가면
예닐곱 평 정도 더 늘어난 갯벌
노인이 누웠던 흔적은 간 곳 없고
괭이 갈매기 떼가 오순도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림 : 강명진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이나 - 흰 동백 사랑 (0) 2019.08.07 정선희 - 6월, 찔레꽃 (0) 2019.08.07 문창갑 - 잡초는 없다 (0) 2019.08.06 김영삼 - 빗소리에 대한 오해 (0) 2019.08.06 고증식 - 몰라 (0) 201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