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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서면 천우짱시(詩)/최영철 2019. 7. 24. 10:18
지금도 서면 천우장 앞이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30년 넘은 약속장소
비밀스런 상처를 서로 덧내지 않으려고
누구도 '그거 옛날에 없어졌잖아'하고 말하지 않는다
천우장 앞에서 시작하고 끝낸 사랑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10년도 전에 20년도 전에, 그 전의 전에도
천우장이라는 고급 음식점에는 도통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서면 천우장 앞이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그 길목 모퉁이 엉거주춤 어떤 자세로 서 있으라는 건지도 다 통한다
큰길 버스 내리는 녀석의 구부정한 어깨가 잘 보이는 지점
지하도 건너 불쑥 떠오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찰랑대는 지점
저쪽 뒤편 시장골목을 지나 치마자락이 나풀대며 걸어오는 지점
서면 천우장 앞으로 그렇게 걸어온 것들이 와서 멈추는 곳
주머니에 든 몇 닢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한번은 환하게 달려와 줄 것 같은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린 곳
없어진 지 오래인 서면 천우장 앞
그때 매정하게 돌아서 간 청춘이 불쑥 돌아올 것 같아
푸른 시절이 걸어나간 길 저편을 악착같이 바라보며
조금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데
천우장 자리 들어선 새 건물 3층 천우짱노래방이
하염없이 목을 빼고 있는 첫사랑을 비틀고 있다
천우짱 천우짱 숨가쁜 맥박소리로
쿵덕쿵덕 흘러간 세월을 비틀고 있다
천우장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691번길 5에 있던 음식점초기 갈비와 냉면을 파는 음식점이었고,
삼오정과 함께 서면의 대표적인 외식업체였다.
음식점은 폐업을 하였지만 옛 천우장 자리에 빌딩이 건설되어 있다
중구 남포동의 미화당 백화점 앞, 서면의 천우장 앞은 휴대 전화도 무선 호출기도 없던 시절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정하였던 곳이었다.
소득 수준의 향상, 서면 상권의 변화로 인해 음식점은 사라졌지만 부산 지역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천우장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다.
(그림 : 박영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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