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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마지막 한 잔시(詩)/최영철 2017. 10. 12. 10:50
살아서 마시는 마지막 잔인데
안주가 없다는 게 쓸쓸한 일이었다
여보게 별고 없었는가 오래만에 내 잔 받게나
주거니 받거니 술 동무가 없다는 게 적적한 일이었다
신김치 몇 토막 안주 삼아 거나해지다
어느 대목에선가 토라져 깡소주 몇 잔 연거푸 들이켤
마누라도 없다는 게 서글픈 일이었다
밀린 술값 닦달하다 어떻게든 곱게 달래 보내려고
어르고 달래던 늙은 주모도 없다는 게 허전한 일이었다
길바닥에 구겨져 있을 그를 쓸어 담아 줄
눈 좀 떠 보라고 재촉할 누군가도 없다는 게 서러운 일이었다
유일한 용기였던 술잔을 비우기 전
그는 잠시 헛기침을 한 후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던 자신에게
'원 샷'하고 낮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고 나니 더 할 말도 없었다
느닷없는 제의에 자신이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그는 꿀꺽 잔을 비웠다
안주도 권주가도 건배 제의도 술주정도 숙취도 없을
마지막 한 잔 이었다
(그림 : 김경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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