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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정 - 마음의 집시(詩)/시(詩) 2019. 5. 15. 09:17
먼 곳에서 안부가 도착합니다
사방이 막힌 이곳은 그러나 투명합니다
당신의 안부는 조명처럼 너무 환해
잠깐 눈을 감습니다
동공이 수축되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조금 흐릅니다
눈앞에는 모두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
그것들은 반짝입니다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처럼
나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그리운 이의 번호를 눌렀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올 때의 배신감처럼
닿는 자리마다 녹아 없어지는
그러나 이곳은 투명합니다
투명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바람에 얼음 알갱이들 실려옵니다
어쩌면 비로소 당도한 모래의 말일지도 모릅니다
잘 지내십니까?
몰래 썼던 일기장을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이곳에서 내 일기는
잘 전시되고 있습니다
시리고 투명하던 마음
닿은 자리마다 녹아내리던 당신의
안부가 켜집니다
가만히 백야의 해가 뜹니다
진 적도 없는데 다시 뜹니다 마음처럼
가려는 곳에 기어이, 햇살이 다가갑니다
(그림 : 허나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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