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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란 - 그날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 한 움큼이 내겐 가장 진실했다시(詩)/시(詩) 2019. 5. 14. 09:35
유통기간 지난 추억들이 쏟아져버린 편지함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차마 버리지 못한 편지들이 먼지와 함께 떨어져 내린다
쓸데없이 아름다웠던 한 시절이
먼지와 함께 방바닥에 나뒹군다
반쯤 뜯겨나간 수취인은 아직도 불명이다
마음속 우체국은 너무 멀다
먼지를 아껴야 할 때가 있다
오래된 먼지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함부로 건드리면 푸른 비밀이 드러난다
편지봉투의 입이 무거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깊이 닫아두었던 문장들이
손끝에서 눈을 뜬다
이 오래된 편지들을 어떻게 다 읽어야 할까
버리지 않는 한 스스로 저를 지우는 기억은 없다
추억은 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날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 한 움큼이 내겐 가장 진실했다
(그림 : 박지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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