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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계자 - 계단 오르기
    시(詩)/시(詩) 2019. 5. 8. 23:23

     

    자주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웃다가

    터진 솔기로 남은 웃음이 빠져나갔다

     

    벽지에선 갈대가 자라고

    물의 고랑마다 첨벙거리던 슬픔들

    지하방에서 옥탑으로 가는 계단을 동전처럼 세었다

     

    새어든 달빛이 가구가 되는 방

    막연히 푸른 지폐의 부화를 꿈꾸었다

    빼곡한 계단을 오르다보면

    생의 오지를 빠나갈 수 있을까

     

    비틀린 늙은 감나무

    갈라진 담장 위로 겨운 듯 얹어놓은 구부정한 관절들

    그 마디 사이로 환하게 켜지는 주황색 등

    어머니 말씀을 읽는다

     

    살자는 일이니 끼니는 거르지 마라

    가진 것 없으면 살이라도 불려야지

    봉제공장에 다니는 딸에게

    꾹꾹 눌러쓴 삐뚤빼뚤한 얼룩진 편지

     

    도금 벗겨진 프라이팬에 계란을 풀며

    눌어붙는 열여섯 살을 살살 긁었다

    부스러지는 오늘도 함부로 버리지 말자고

    일기장을 펼쳐 마음에게 손가락을 걸었다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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