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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 체념(體念)시(詩)/시(詩) 2019. 4. 27. 23:25
어떤 날씨와도 무관한 기후 속에서
지평선을 바라본다
나는 이미 알고있다
그림자는 태양이 사물을
영원히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을
내 곁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다만 머릿속엔 유순한 양 한 마리
그것의 사라지는 다리
사라지는 머리
사라지는 꼬리
그것은 타원형의 구름이 되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순수해졌다
꿈속에서 나는 조금씩 위험에 빠지고
규칙적으로 절규한다
나는 바란다
생각에 너무 골몰하지 않는
평범한 어부의 자세를 좇을 수 있다면
귓바퀴는 여린 물결 소리들을 하나씩 불러 모으고
눈동자는 달빛의 무딘 뿔 끝을 어루만지고
나는 조금씩 안전해지고
규칙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새벽녘 공기의 성긴 그물 아래에서 깨어나면
지난밤 꿈이 운 좋게 포획한 한 마리 물고기인 양
가슴속에서 심장이 퍼덕거린다
나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기다란 사물인 그것을
어떤 요구와도 무관한 기다림 끝에
나는 문득 깨닫는다
시계는 시간이 거짓말이라는 증거인 것을
나는 무언가를 예감한다
그것은 매우 기적적인 종류의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것을
오래오래 체념할 것이다
(그림 :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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