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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만 - 송이 산시(詩)/시(詩) 2019. 4. 23. 10:34
불 한번 스치면
삼십 년 동안 잠잔다는 송이 산
소나무들 숯가리 된 아침에
송이 숨소리와
향을 맡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평생 송이 산에 오르내리면서
작은 놈은 솔잎으로 덮어주고
땅속에서 몸 부풀리는 놈 행여 밟을까
걸음발 재던 그 사람의 눈에는
송이 포자 꿈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송이 산 한번 되기 위해
수백 년 바람에 흔들리고
솔잎은 수백 번 떨어져서 쌓이고
그 속에 햇살이 기어들어
땅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그래야 그 속에서 향기 나고 숨소리 생기는
그 아름다운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
삼십 년의 몇 번이 지난 뒤
솔이 서고
그 몇 번이 지나야 솔잎이 쌓이고
그 속에 햇살 한 백 년쯤 살고 난 뒤
날아갔던 송이 포자 몇 개가
내려앉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 : 서인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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