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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아궁이 들여다보기시(詩)/송진권 2019. 4. 10. 18:47
아직 온기가 남은 아궁이 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들이 초롱하니 눈을 뜨는 것이다
재를 헤치면 잘 익은 고구마나 감자가
데굴데굴 굴러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며느리 불 때기 좋으라고 가시 달린 나무는 빼고맞춤한 크기로 나무를 잘라 들여주던 마음이 사는 것이다
고추장 종지 간장 종지 얹은 밥상에다
고슬고슬하니 자르르 윤기 흐르는 밥을
사발에 꾹꿀 눌러 고봉으로 담아주던 마음이 사는 것이다
시어른들 어려워 상을 들이고
부엌 바닥 따뱅이 위에 바가지 얹어서
눌은밥을 먹던 이가 사는 것이다
물독 터지는 소한 추위에
송아지 춥지 말라고 아궁이 앞에 들여주던 마음들이 사는 것이다
헌 이불 뜯어 덕석 만들어 입혀주던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등에 업은 어린것에게 아궁이를 헤집어
호호 불어가며 먹이던 고구마 같은
훈김 나는 마음들이 사는 것이다
펀지기 구정물에 비치는 겨울 별자리처럼
어룽어룽 사는 것이다(그림 : 문순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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