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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정 - 허릴 숙이고 엉덩이는 들고 가랑이 사이 저 먼 델 어질어질 쳐다보는 버릇 아직 여전합니다만
    시(詩)/시(詩) 2019. 3. 26. 18:44

     

     

     

    행여 흩날릴까 영 조심스런 예닐곱쯤입니다만.

    그 즈음 논다랭이가 엎치락뒤치락 산입네 논입네

    저 아래 민둥치을 향해 기울던 등턱골에서 땡볕이나 뒤지며 놀던, 나는 들꿩이었더랬습니다.

    두어 살 아래 사촌과 도마뱀을 쫓다보면 찔레순 아래, 찔레순 꺾노라면 샛도랑에 냉큼 잇닿아버려서,

    돌 헤집어 가재나 쫓곤 했지요. 둑 너머로는 어허-이 허-어이 찰방대는 물논에 메김소리 따라 못줄이 뜨고,

    엄마 아버지도 작은 집 식구도 동네사람들도 물 오른 아랫도릴 꽂자커니 모를 심자커니 왁자했지요.

    늘 맑지만은 않은 기억의 날씨라서 써레를 끌던 누렁소가 쇠뜨기 섶을 뜯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요.

    이도저도 심드렁하면 돌 밑에 고들고들 매달린 거머리를 풀모감지에 꿰어 속내째 뒤집어보곤 했습니다.

    어쩔 양으로 밑 빠진 강장의 생을 들쑤셨는지는 딱 꼬집을 수 없다지만요,

    다들 한 군데쯤은 밑 빠져버린 걸 그예 확인하고 싶어서 그 시절,

    가문 날 우묵한 발자국에 몰린 올챙이들처럼 꼬물거리며 바구니든 독이든 사랑방에서든 기대어 완벽했더랬습니다.

    때 절고 얼룩 슬고 말쿠지도 두어 개 박힌 흙벽쯤에서 사람들은 호롱불의 힘으로 눕고 일어났습니다만,

    그 밑 빠진 데는 그런 까닭에 허릴 숙이고 엉덩이는 들어야 보입니다만.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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