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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 생산 라인시(詩)/시(詩) 2019. 3. 21. 16:35
white shirt 공장
이곳이 내가 선택한 품위다
마흔 가지가 넘는 와이셔츠 공정에서 칼라와 커프스를 다는 것이
지난 이십년간 지켜온 나의 업무
숙련된 자들에게선 고르고 안정적인 소리가 난다
원단을 가르는 가위로서
박음질하는 미싱기로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 다리미로서
이십 년이다
그러니 검붉은 피가 번지는 일
노릇하게 구운 냄새가 나는 일
옆자리의 동료가 사라지는 일
결코 실수가 아니다
하얀 옷감이 하얀 옷감을 오염시키는 걸 매일 목격하는
이곳에서
목과 손목을 여미는 품위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가 없고
축 늘어진 와이셔츠의 소맷자락을 잡고 질질 끌며 걸었던
밤거리마다 단추가 놓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단추를 달고 실밥을 처리하고 다리미질을 마친 와이셔츠는
출고 작업에 들어간다
나의 동료는 어깨를 제일 먼저 다렸다 항상
퇴근 시간을 알리는 라디오 디제이
그리고 동료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사진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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