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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 그 한 마디 말시(詩)/시(詩) 2019. 3. 2. 13:09
1
오늘은 용돈 주는 날
매달 중학생 아들에게 용돈 줄 때
봉투에 넣어주는 쪽지 글 있다
“아비는 너를 믿는다”
그때가 언제던가
전봇대처럼 우직하시던 아버지
하나 자식 인간 되는 것 보지 못했다며
외양간 치고 두엄 내던 손으로
내 종아리 매질하던 당신의 기도문
막걸리 냄새나던 당신의 사랑법
새벽잠 깨면 콧등이 시큰해지는 말
훗날 아들의 등 뒤에서 힘이 될 그 한마디 말
2
새벽 출근길
양복 주머니에 든 쪽지 글
“아버지, 사랑해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중학생 아들의 응원가
지갑 속 부적보다 더 힘나는 말
어깨에 전깃줄 둘러멘 전봇대처럼
한평생 참고 견뎌내시던 농사꾼 내 아버지께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말
입안에서 맴돌았던 말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듯
후회는 왜 매번 막차를 타고 오는 것인가
아아, 끝끝내 억울하게 못한 그 한 마디 말
3
늦은 밤
아파트 현관문을 들락거리던 아내
중학생 아들에게 문 열어주며
내색 않고 던지는 첫마디
“밥은 먹었니?”
아들은 피자 먹었다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때도 그랬지
이슥한 밤 대문 밖을 내다보다
전봇대 외등 아래 서성이던 아들에게
아버지 몰래 대문 따주셨던
내 어머니의 인사법
시외전화 할 때마다 꺼내시던 첫마디
김치찌개 냄새나던 당신의 모국어
아랫목 이불 밑 밥그릇 같은 그 한 마디 말
4
저녁 밥상머리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던 중학생 아들
가시눈으로 내뱉는 말 있다
“엄마가 뭘 알아!”
나또한 저랬지
소싯적 영어 참고서 살 때였다
알면서도 늘 속아주던 어머니께
내가 성깔을 부렸던 그 가시 박힌 말
소학교도 못 나온 억척 어미
말없이 날 빤히 쳐다보다
옆방에서 한참 나오시지 않았지
가슴에 박혔던 자식의 가시 돋은 말
당신 생전에 못다 뽑아냈을 그 한 마디 말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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