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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당신, 푸르다 못해 검은 당신
내가 덩굴에서 떨어져 내릴 때,
두껍고 단단한 어깨 잠시 빌릴 수 있을까
미처 다 마르지 않은 꽃잎들
마를 동안 머무를 수 있을까
나는 아주 가벼워서
당신의 어깨를 아주 조금만 차지할 거야
나는 아주 얇아서
아주 빨리 시들 거야
아마 당신 무심한 당신
아침마다 전쟁터로 달려나가는 당신
흠집 하나 없는 투구 위에
패배한 적 없는 청동의 방패 위에
온 힘을 다해 내가 뛰어내린다 해도
아마 모를 거야
몰라도 좋아 몰라야 해
모르게 할 거야
아주 오랜 후에
지상의 영광이 모두 지고 나서도
빛나는 금빛 이마는
자랑스런 목 위에서 여전히 빛나겠지만
홀로 우뚝 빛날수록
한숨 쉬며 당신 말하게 될 거야
문득, 언제인가
흐린 꿈속에
빛나는 줄 모르고 빛나던 한때를
가볍게 스쳐간
가시갑옷의 꽃 한 송이가 있었다고
너무 가벼운 장밋빛이어서
그 꽃이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찌르고 간 줄
그때는 몰랐다고
(그림 : 김순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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