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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 아내의 꽃시(詩)/마종기 2019. 2. 27. 19:39
어떤 나무는
크고 탐스러운 꽃을 만들고,
어떤 꽃나무는
꽃잎의 색깔에 관심이 많아
힘찬 기운의 원색이나
드문 색깔의 조화를 수놓아
한 개의 꽃만으로도 눈이 부신데,
어떤 꽃나무는
간직할 향기에만 전념해
지나가는 길목에서도 언뜻
황홀하게 만나는 꽃 향.
그런데 어떤 꽃은
듬직한 나무도 거느리지 못한 채
살아있는 것만도 기쁜 듯
크기도 색깔도 향기도 별로 없이
맨날 혼자 웃으며 흔들거리네.
그런 꽃들을 보면
편안해지고 만만해지고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데, 그래서
아마도 아내의 꽃이 아닐까 하니
그 힘든 순명이 자기 민얼굴이라며
은근한 꽃의 손으로 나를 안아주네.(그림 : 김영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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