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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펼쳐보지 않았던
오래된 책이
반갑다며 내게 안긴다.
아직도 체온을 가진 종이.
나만 나이 든 줄 알았더니
책도 늙는구나.
눈에 익은 것은 모두
잊지않고 나이를 보인다.
책을 털고 펼치니
보이지 않던 먼지가 날린다.
무심결에 꾸미며 산다고
감추어두었든 날들이 깨어나
먼지를 날리는 내 어깨.
(그래, 무관심이 제일 힘들었지.)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에
기억의 줄은 느슨해지고
비어 있는 시간의 틈새.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내가 버리고 온 말들은
오늘 밤 잠이나 깊이 들까.
(그림 : 정창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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