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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엿 먹어라시(詩)/유안진 2019. 1. 18. 22:00
가위소리에 솔깃해져 인사동골목으로 접어들자, 문득 마주치는 엿타령에, 덜렁 한 봉지 사버렸다
“엿사시영 여사뿌렁"
울능도라 호박엿을
전라도라 찹쌀엿을
강원도라 감자엿을
엿사시영 엿을 싸이
울긋불긋 호박엿을
찰싹 앵긴다 찹쌀엿을
강원도라 메밀엿을
경상도라 접쌀엿(보리엿)을
강냉이엿 술엿 파(팥)엿을
함경도라 길따란 도드름엿
평안도라 넓찍하구 딩구런 엿을
모단 세상 정 맞것다
둥글둥글 호박엿을
떠난 사람 임 기리운데(그리운데)
찰삭 붙은 찹쌀엿을…“이명(耳鳴) 같은 속요가 끈날 즈음에,
상소리 욕설 "엿 먹어라"들이 왁자하게 쏟아진다
엿도 인생처럼 좋고 안좋은 여러 말뜻이 엉겨붙어,
몸 섞이고 마음 섞여 단맛이 된거니까
해마다 섣달 그믐에는 아궁이에 개엿을 발라서
상제(上帝)께 올라간 조왕신의 입이 붙어서
집안일을 미주알 고주알 고자질 못하게 했고
신생길의 신부 속눈썹에도 엿물을 발라
부정한 것을 못보게 했다지
찰떡 궁합 엿치기 궁합은 백년해로를 뜻했고,
탐관오리 입도 엿 먹은 벙어리나 꿀 먹은
벙어리라고 했다는 엿 한토막을 물고 걸어니
전통없는 전통의 거리에서 전통 하나가 된 듯하여라,
상소리 욕설조차 전통이듯 정겨워져라,
좋은 날 잔치과자였든 엿 맛에 잔치 마당 같아라
(그림 : 임병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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