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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11월의 숲시(詩)/심재휘 2018. 11. 22. 09:01
가을이 깊어지자 해는 남쪽 길로 돌아가고
북쪽 창문으로는 참나무 숲이 집과 가까워졌다
검은 새들이 집 근처에서 우는 풍경보다
약속으로 가득한 먼 후일이 오히려 불길하였다
날씨는 추워지지만 아직도 지겨운 꿈들을 매달고 있는
담장 밖의 오래된 감나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나는
숲이 보여주는 촘촘한 간격으로 걸어갈 뿐이다
여러 참나무들의 군락을 가로질러 갈 때
옛사람 생각이 났다 나무들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자꾸 몸을 뒤지고는 하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길쭉하거나 둥근 낙엽들의 기억에 관한 것밖에는 없다
나는 내가 아는 풀꽃들을 떠올린다
천천히 외워보는 지난 여름의 그 이름들을 그러나
피어서 아름다운 순간들에만 해당한다
가끔 두고 온 집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한때의 정처들 어느덧 숲이 되어 가는 폐가들
일찍 찾아온 저녁의 기운에 낙엽 하나가
잔 햇살을 보여주기도 감추기도 하며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규칙을 궁금해하지만 지금은
낙하의 유연함을 관람하기로 하는 떄 그리하여
나는 끝없이 갈라진 나뭇가지의 몸들을 만지며
내가 걸어가는 11월의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림 : 박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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