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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두끈이 풀어져
걸치적거리는 것도 모르고
허위허위 걸어왔다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묶어야 할 것은 묶고
매야 할 것은 단단히 매야 하는데
풀어진 구두끈처럼
몸이 풀어져 허우적거린다
풀어진다는 것은
매이고 묶인 것이 풀리는 것이고
질기고 단단한 것이 흐늘흐늘해지는 것이고
모두가 해소되고, 잘 섞이어지는 것이다
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구두끈도 때로는 풀어져
한평생 싣고 온 짐을 부리듯
사막길 벗어나는 꿈을 꾸는 것을
나는 이제껏 모른 채 살아왔다
끈은 오로지 묶여 있는 것이 전부였다
구속 당하는 것이 유일한 제 임무였다
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몸으로 제가 저를 잡고 있어야 하지만
끈은 늘 풀어지려고 모반을 꾀하고
헐렁해지고 싶어 일탈을 꿈꾼다
때로는 끈을 풀어 푸른 자유를 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구속만 강요해 왔다
이제 몸도 풀어 줘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오늘도 구두끈이 풀어진 것도 모르고
고삐 없는 노마(駑馬)가 되어
휘적휘적 걸어서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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