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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명 - 반짇고리시(詩)/시(詩) 2018. 9. 22. 09:56
축 늘어진 단추를 달려고
당신이 두고 간 반짇고리를 열었더니
색색의 실꾸리와 헝겊조각들
크고 작은 바늘이 누워 쉬고 있다.
아직도 어떤 바늘은 흰 실로
어떤 바늘은 검정 실로 길을 멈추고
이불홑청 꿰매던 돗바늘은 눈만 껌벅거린 채
안온하게 기댈 어깨 되어주지 못한 나를
짓무르도록 응시하고 있다.
하루도 편한 날 없이
흰 실로 검은 실로 뜯겨진 삶을 깁던 바늘들
자금 그 곁에 다가서 포개 누우면
지난날 아픈 숨결 다시 해줄 수 있을까.
남루한 삶을 깁다가
가끔은 무지개 꿈도 깁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골무마저 무너져
열손가락마다 피가 맺혔던 당신, 오늘에야
그 아픔의 바늘이 나를 찌른다.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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