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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민들레, 꽃다지, 냉이꽃, 불러 모으는
시골 학교 종 같은 종다리 울면
사람들의 몸에서 보리 냄새가 난다.
추울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리던 보리
발로 밟혀야 더 단단해지던 보리
그 보리에 볼을 부비면
얼었던 내 피가 따뜻해진다.
보리 잎 사이에
거미는 집을 짓기 시작하고
종다리는 보리밭 둥지에
햇살처럼 뽀얀 알을 낳고
아지랑이는 해종일
보리밭 위에서 서성인다.
보리밭 길을 가는 소년의 발부리 밑에서는
소년의 여드름처럼 풀이 돋아나고
보리 이삭처럼 턱수염이 텁수룩한 농부는
보리 잎을 뜯어 씹는다.
바람이 불면
보리들이 풍금처럼 노래하는 사월,
보리 잎처럼 푸르른 날에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해야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야지.
내 몸에서 보리 냄새가 난다.(그림 : 박준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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