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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물을 세운다시(詩)/시(詩) 2018. 9. 8. 13:44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얘기지만
물을 공중에 비스듬히 누이면 무지개가 된다
무지개를 누이는 자 누구인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누인 자가 누군지는 누워본 자만 안다 강물의 마음은 지평선이 안다
산을 누이고 구름을 누이고 바람을 누이다보면 지평선이 보인다
무지개를 걸어두는 것도 지평선이다
오늘은 지평선 위에 누군가 물을 세우고 있다
세워진 것은 반듯이 눕는다 누운 것은 결국 흘러간다
머지않아 흘러간 것들은 다시 제 몸을 세우리라
세우고 눕고 세우고 눕는 것이 물의 본능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얘기지만 물을 세우면 폭풍이 달려온다
폭풍은 누운 물 보다는 세워진 물을 좋아하나보다
무지개와 폭풍 사이, 들판에 살아있는 것들은
눕고 세우고 눕고 세우고를 반복한다
물은 지하의 깊은 웅덩이에 제 몸을 가두기 전까지는
출렁거린다
내 안에서 물이 일어선다 누군가 자꾸만
물을 세운다
나는 강처럼 눕고 싶어진다
(그림 : 이인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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