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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환 - 미로에서 길을 잃다
    시(詩)/시(詩) 2018. 9. 8. 01:43

     


    길을 잃었네 채 한 시간도 되기 전 검은 동해바다를 뒤로하고 내달리다

    삼척 하장을 지나 미로 근처에서 아니 신기쯤부터였을까

    길은 새 단장을 했으나 오래된 길처럼 흙먼지와 석탄가루가 뒤엉켜 아스팔트 위를 훑고 지나는 듯한데

    어린 시절 유배를 떠나던 길처럼 눈에 익네 어쩌면 다른 시간 속을 부유 중인가 보네

    어디 끝 모를 동굴 속을 헤매는 것인지 아슴아슴한 기시감이 목줄기를 훑고 지나네

    지난해 서설 위에 켜켜이 쌓인 눈으로 인해 속살을 모두 드러낸 듯한 산속에는

    춥고 굶주린 산짐승 날짐승들이 바위 뒤거나 나무 등걸에서 맑은 눈을 들어 생을 헤매는 한 화상을 좇고 있을 것이네

    근처에는 범접키 쉽지 않은 금강송 군락도 있을 것이고 더 깊은 골 어딘가에는 무릉도원도 있을 것인데

    세속을 잊고 구도도 않으며 산 그림자처럼 조용한 사람이 초근목피하는 너와집 하나 정도는 만날 수도 있을 것이네

    명동하는 세상이 어떤 것의 사라짐을 향해 '실종'이라거나 '멸종'이는 말로 처리하고 말더라도 서러울 것 하나 없겠는가

    라짐이란 이렇게 불현듯 이루어져야 맞는데 길 잃은 척만 하고 있네

    사라진 것들은 늘 말이 없고 남은 것들만 그리움에 몸을 떨 뿐이지

    발 선 눈으로 어울려 서로의 간을 저몄던 일들과 살기 위해 함부로 간구했던 위해로운 노동들과

    설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가계를 두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던가

    사랑은 하면 할수록 아프고 삶은 추스를수록 흘러내리네

    여기는 迷路이고 저기는 美路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未老여서 가닿지 못한 거기가 未路인가

    (그림 : 이금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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