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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 회상하는 나무시(詩)/이향아 2018. 9. 2. 00:25
겨울나무 마른 가지는 죽지 않았다
죽음보다 무겁게 눈을 감고 있을 뿐
짧은 봄 질컥이는 밭두렁 길과
가을 강 가라앉은 긴 이야기를
회상에 젖어 있기 아픈 나무는
열 손가락 펴서 그물을 치고
만국기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지난여름보다 숙성해 있다
돌아다보는 얼굴은 달빛마다 추연하다
더 붉은 꽃, 더 실한 열매를 그리면서
돌아다보는 눈물은 그렇다, 아름답다
세상에는 횃불을 밝혀도 보이지 않는 것이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금 같은 침묵은 시작되었다
실가지에서 뿌리로 수백 리 물길을 트고
천지에 흩어진 핏줄을 모아
새 목숨을 연습하는
겨울나무
안개 같은 숨을 속으로 내쉬면서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림 : 조선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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