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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미 - 옛집
    시(詩)/조용미 2018. 7. 21. 18:17

     

    나와 동생이 탯줄을 잘랐다는 이십 년도 넘게 내버려진 폐가에
    아침 안개를 걷고 올라가 보면
    잡풀과 도꼬마리 옷에 쩍쩍 들러붙어
    마당 어귀에서부터 발목이 잡힌다
    안으로 들어서려는 그 어떤 힘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폐허의 성(城), 깨진 옹기 뒹구는 장독대를 바라보며 폐허와 내가
    반대편에서 자라고 있었음을 알겠다
    메주를 메달아 놓아 늘 쾨쾨한 냄새가 가시지 않던
    사랑방 문짝까지 닿으려면
    허리까지 오는 잡풀들만 걷어내면 되는 것일까
    길을 낼 한치의 빈틈도 내주지 않는 잡풀과 나 사이의 경계가
    산맥처럼 멀다 폐허를 더듬으려면
    내 몸 구석구석을 만져보면 된다
    동생이 구운 참새 다리를 물고 서 있다 작은아버지가 타작을 한다
    할머니가 애호박을 삶는다 고모는 보이지 않는다
    장독대 옆에 참나리가 핀다 뒤란에 까마중이 까맣게 익는다
    내가 그걸 탁탁 터뜨린다 옛집이 잠시 붐빈다

    죽어 한가로운 앞마당의 감나무,
    이사터 옛집과 내가 헤어지고 나면 서로 어디까지 치 닫을지 모른다
    옛집은 낙타의 걸음걸이로 세월을 향한다

    (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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