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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탐매행(探梅行)시(詩)/조용미 2017. 3. 5. 23:58
올봄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 만나러 나선 길이 멀었지 멀어서 참으로 까마득했지
허물어질 듯 네모난 연못가에 서 있던 매화나무,
산속 깊은 물소리에 해마다 매화 향을 얹어놓았겠지
바람이 차서 대숲 종일 소란스러운 이른 봄날엔 꽃잎을 멀리까지 살러 보냈겠지
멀리서, 매화가 처음 보는 객이 찾아왔다네
내 아는 매화나무 한 그루는 오래 묵어 검고 갈라진 살갗을 가졌네
꽃잎도 높은 가지 끝에만 잔설처럼 달려 있네
내 아는 매화나무는 그 아래 지나다 문득 바라볼 일 없는 산속 깊은 곳에 있다네
나는 한나절 앉아 매화나무 한 그루를 포섭했지
물소리 쪽으로 기울어진 듯 자란 늙은 매화나무는
천 리 길을 오게 하고 한나절도 모자라 하루, 이틀을 다시 올라와 앉아 있게 하지
해 기울도록 앉아 있어도 아무도 내다보지 않고 간섭하지 않고
고무신 한 켤레 털신 한 켤레 댓돌에 나란히 놓인 암자가 있는 곳
사백오십 년 묵은 산매화는 큰 절과 암자 뒤편 또 보이지 않는 암자 가는 길 어디쯤에 숨은 듯 피어 있지
물소리 여간해서 그치지 않는 곳,
바람 세찬 날 대숲의 키 큰 왕대들이 더걱더걱 부딪히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곳, 내 아는 매화나무 한 그루는
(그림 : 김영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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