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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옛 동네를 지나면 생각나는 부자유친의 저녁시(詩)/이상국 2018. 6. 26. 12:51
이 동네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아들과 나는 축구를 했다
어떤 날은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다
아들은 골잡이를 하고
나는 골키퍼를 했다
그 반대도 했다
아들은 쓸데없는 고함을 지르며 골을 넣고
나는 땀을 흘리며 막았지만
서로 조금씩 봐주기도 했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부자유친 같은 것이기도 했다
교정의 히말라야 시다가 학교를 가리는 동안
그 애는 어른이 되었고
나는 늙은이가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시간이 하는 일이었고
어느 날 하늘에서 눈이 내리거나
봄가을이 하는 일과 같은 거였다
지금은 혹시 내가 사정해도
그 애는 나와 공놀이를 해주지 않을 것이다
재미도 없겠지만
우리들의 유친(有親)도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러나 섭섭하지는 않다
나 대신 어느 동네 운동장에선가
제 아들과 저물도록
공놀이를 할 것이 때문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 ) : 가정윤리의 실천덕목인 오륜(五倫)의 하나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말.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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