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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복골 사람들시(詩)/이상국 2018. 12. 16. 13:24
비 끝에
돼지 잡아 잔치하고 양구집도 갔다
트럭에 농짝이랑 TV, 늙은 어머니 싣고 떠나던 날
이장네는 텃밭에 마늘씨를 묻었다
차거운 흙 속에 눈물을 묻었다
볕도 예전 같지 않아
한 해 추위에도 많은 나무들이 세상을 뜨고
들판의 염소들은 수염을 흔들며 울었다
복골을 버린 차가
장거리 쪽으로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나눠 맡은 장독이나 멍석때기 들고 선뜻 흩어지지 못해
늦게까지 술잔 기울이는 구판장 바람벽에서
반이나 벗은 맥주회사 여자가
복골 남자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여물 때가 되어도
어묵공장 막일 나가는 며느리는 돌아오지 않고
마늘쪽 같은 아이들이 구들에 불을 넣는다
날이 가물어서
푸섶 타는 연기 같은 어둠이 마을을 덮어오는
조선의 추억 같은 저녁
이장네 칠순 아버지가 소를 들여 매고 있다
세상이 언짢다고 혀를 차는 등 뒤로
저무는 길 어디서 양구집 트럭 멎는 소리 들리는데
울타리 나무들이 별을 지고 섰다
(그림 : 김남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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