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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희구 - 달성공원 (達城公園)
    시(詩)/상희구 2018. 5. 22. 21:11

     


    달성공원은

    대구시민의 "희망발전소"다​

    살림살이는 째이쌓고

    이래저래 되는 일은 없고

    모등기 짜증시럽을 때

    누가 '달성공원에 가자' 그카마

    갑재기 힘이 불끈 솟는다

    납딱보리밥에다

    미리치젓갈이

    포오옥 절이삭은

    정구지짐치 겉으마

    점섬 도시락으로는

    그마이고

    거게다가 계란 및 개

    고구마 및 개씩 삶아 옇고

    삭한 감, 능금 및 개만

    있이마 소풍 꺼리로는

    일등이다

    가실 단풍이 좋은데

    발씨로 공원 안은

    인산인해다

    군위(軍威) 효령(孝令)서 온 할매는

    할배로 찾아쌓고

    예천(醴泉) 감천(甘泉)서

    코끼리 보로 온 아지매는

    잊아뿐 알라로 찾아서

    날리가 났고

    저어 멀리 울진(蔚津)서 온

    아​재씨는 공원 구석구석

    귀경 다하고

    나갈 구녕을 못찾캤다 카민서

    허둥거리쌓는다

    '미아보호소'라 카는데는

    발씨로 에미 에비로 떨가뿐

    아아들 너댓이 와낭상컽치

    울어쌓는다

    달성공원 귀경은

    안에서보다 밖에서가

    볼끼 더 많을 때가 많다

    가짜약장사 아재씨들

    뱀 구시리는 기랑,

    이바구로 넉살대는 거,

    원시이 재주 넘는 거,

    지집아들 사발 돌리는 거,

    꺼정 다 볼라카마

    어북 작은 사까수나

    진배 없다

    거게다가 야바우꾼들

    요술 부리는 거,

    자칭 시민운동가들이

    고함으로 열변을 토하는 거,

    까정은 참 빌난 귀경꺼리다​

    어데 쉴만한 데로 갈라카마

    팔공산 동화사, 동촌 유원지,

    가창 냉천은 너무 멀고

    화원 유원지, 옥포 용연사

    수성못꺼정도 너무 멀다

    바로 코앞에 있는 거 겉에서

    대구 어데서나 시영(市營)뻐스만

    훗딱 집어타마, 밥상 우에 숙까락

    집어 드는 거맹쿠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갈 수 있는

    우리네의 달성공원

    대구시민의 "희망발전소"인

    달성공원은 지금도

    힘차게 가동 중이다

    째이쌓고 : 째인다는 바짝 좁혀든다는 의미인데 경상도에서는 살림살이 등이 구차할 때 째인다, 짲힌다 라고들 쓰고 있다

    납딱보리살 : 보리살을 기계로 납작하게 누른 것을 말한다 보리쌀은 쌀보다 거칠기 때문에 밥을 하기 전에 한 번 삶아야 하지만

    누른 보리쌀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한시절 납작보리쌀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납딱은 납작의 경상도 말이다.

    미리치 : 멸치

    절이삭은 : 곰삭은

    정구지 : 부추

    가실 : 가을

    잊이뿐 알라 : 잃어버린 애기

    이바구 : 이야기

    나갈 구녕 : 빠져나갈 구멍 즉 출구(出口)를 말함

    에미 에비를 떨가뿐 : 떨구다는 떨어트리다의 뜻이니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와낭상겉치 : 와낭은 완악의 뜻이니 아기 등의 울음 소리가 클때 와낭상겉치 운다고 한다

    원시이 : 원숭이

    어북 : 제법

    달성공원 (達城公園)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에 있는 공원이다. 본래 달성토성이었다.

    달성공원 자리는 본래 달성 서씨의 세거지(世居地)였는데 세종대왕 때 문중에서 토지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세종대왕이 이를 포상하려 했지만 ‘서침’은 그 대신 국가에서 서민의 환곡을 탕감해줄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따라 대구의 상환모곡은 1석당 오승씩 감면케 되었으며 조선 말까지 그 특례가 존속되었다.

    대구 부민은 이와같은 '서침'을 숭모하여 1665년 대구 구암서원에 봉향하였다. 한편 세종대왕은 회화나무를 심어 서침의 마음을 기리게 했는데

    현재 달성공원 내에 있는 '서침나무'가 그 나무로 알려져 있다. 달성공원 자리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 달불성이 있었다.

    선조 29년(1596)에 석축으로 개축하고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을 현재의 경상감영공원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두기도 했다.

    190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달성공원 안에 대구신사(大邱神社)가 세워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발간한 《일본동맹통신사》에는 대구신사의 건립에 조선인 김용주(창씨명 가네다 류슈)가 2천 원을 기부하였다고 되어 있다.

    1963년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다. 이어 1965년 2월 달성공원 종합조성계획을 확정한 후 1969년 공원으로 탈바꿈시켰고,

    1970년 5월 달성공원 종합문화관,동물원 조성을 완료하고, 공원 내에 이상화 시비, 관풍루,천도교 최제우 동상을 안치하였다. 

    (그림 : 조규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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