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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뙤약볕 그늘에 앉았노라면
혼자 실실 웃음이 나지
겸손이 미덕인 줄 알지만
나도 몰래 치켜드는 턱
내려뜬 눈길 찢어진 입가에서
좀처럼 숨길 수 없지
대상(隊商)마저 고개 젓는 열사의 바다
타는 갈증의 단맛에 침 흘리며
범선처럼 당당히 저어 나가고
사막여우도 등 돌리는 모래언덕
유유히 콧노래 스텝 밟듯 넘나들고
사방천지 눈 못 뜨는 모래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길을 열고 떠나지
야자수 그늘 오아시스에 목을 축이고
마르고 닳아버린 등줄기 혹과
아픈 재갈과 고삐를 더듬어보면
잊어버린 신기루 같은 내 생애의 꿈이
붉디붉은 사막 노을에 오늘도 어려
백년초 용설란 꽃을 닮은
저만치 높다란 웃음 또 한 번 터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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